Au 22. 호주 다윈에서 한인회사 -> 오지회사로 이직하게 된 썰 (上)

어쩌다보니 마지막 출근사진이 된.jpg

생각보다 일찍 이직을 하게 되었다.
계획상으로는 세컨, 서드비자까지 해결한 후
이직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맞물려
오지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다.
 
회사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들이라
적기 직전까지 조금 망설였지만
이 또한 호주 삶에서 남겨야 할 기록이기에
가감 없이 사실만 적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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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볼링장. 벌써 3달전임.

다윈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오픈카톡방에서 볼링을 칠 멤버를 구했고
시간이 남아 무작정 참여했다.
 
볼링을 2게임 정도 치고 나서 간단히 티타임을 가졌다.
알고 보니 다윈의 오지 타일회사 사람들이었고
그분들로부터 우리 회사에 대한 사정이나
다윈에 관한 여러 얘기들을 듣게 되었다.
 
긍정적인 얘기도 있고 부정적인 얘기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기에
아직까진 별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얘기해 준 부분들에 대해
머릿속 깊숙이 잘 저장해 놨었다.
 

전개

이때 재밌었는데ㅎㅎ

앨리스 스프링스로 출장을 갔을 때
최고기술자와 사장이 싸웠다.
원인은 출장 첫날 근무 인보이스를 청구할 때
출근시간이 너무 과도하게 잡혔다는 것.
 
내가 출장 첫날에 오늘 출근시간이 언제냐고 물었고
최고기술자는 매니저에게, 매니저는 사장에게
해당 부분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본 것 같다.
 
사장이 직접 나한테 전화가 와서
'앨리스 스프링스로 이동하는 시간 전부'
근무시간으로 포함된다고 했다.
 
'앨리스 스프링스로 이동하는 시간 전부'는
사장 입장에서는 '비행기를 탄 시간'으로 이해를 했고
최고기술자, 나, 매니저 입장에서는
'차로 공항까지 이동한 시간부터‘라고 이해를 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오해이고
내가 사장이었다면 이에 대해 잘 설명한 후
직원과의 협의점을 이끌어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사장이 최고기술자에게 얘기할 때
비속어를 쓰며 선을 넘은 것이다.
말다툼이 격화되고 나까지 불려가
유선상으로 삼자대면을 했다.
 
위 내용에 대해 삼자대면을 마치고
1시간이 넘게 전화가 더 이어졌고
결론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몰랐지만
최고기술자 형님이 퇴사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다만 후에 얘기를 들었을 때
이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고
항상 선을 넘었던 건 사장이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위기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머리 속은 복잡함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복귀한 후
최고기술자를 위시한 기술자 형들이
줄줄이 퇴사를 했다.
 
최고기술자는 사장과의 불화가 원인,
기술자 형들은 영주권을 얻었으니
한국으로 가는 것이 원인.

모두 퇴사 노티스를 냈고
빠른 시일 내 퇴사를 해
회사에는 매니저와 나, 데모도 동생
총 세 명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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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에 오래 있으려면
그 회사가 오래갈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기술자가 전부 퇴사한 뒤숭숭한 분위기,
업무에 몰입할 수 없는 환경,
실질적인 물량을 뽑아내는 기술자가 없어
성장할 수 없는 회사.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고 느껴졌다.
 
기술자들이 전부 나가고 난 후
사장이 시드니에서 다윈으로 와
직접 일을 시작했다.

다시봐도 충격적인.jpg

하지만 사장은 그간 말했던 것에 비해
전혀 실력이 없었고
하자시공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먹었다.
그마저도 이틀 정도 일하고 다시 시드니로 돌아갔다.
 
이때쯤부터 나도 회사에서
'더 얻어낼 수 있는 게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고
퇴사라는 옵션도 고려하게 되었다.
 

절정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회식장소

사장이 시드니로 가는 날, 묘한 소리를 했다.
7월부터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의 이름이 변경된단다.
단지 회사이름만 바뀌고 실제적으로 바뀌는 건 없다고
그냥 지나가듯이 툭 내뱉은 말이지만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던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돈을 지급하는 회사는 없기에,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가 바뀌면
내가 소속된 회사도 바뀌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회사가 바뀌는 것까지 이해할 수 있다.
근데 왜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가?
왜 기존 회사의 퇴직원을 작성하지 않는가?
 
정당한 입퇴사 절차를 밟지 않는다는 것은
서류상의 절차를 누군가 대신한다는 뜻이다.
대신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공정 계약에 서명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실체가 없는 페이퍼 컴퍼니와 계약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사장과 전화를 했으나
'세컨비자를 신청하려면 회사를 변경해야 한다'
'남들 다 그렇게 한다'
등의 말도 안 되는 소리만 계속했다.
 
계속된 거짓말은 나의 퇴사결심을 확고히 만들었고
같은 질문만 하니 결국 사장도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
'지금 회사를 퇴사하고
다른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회사 명의의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했고
사장도 이에 동의하고 계약서를 보내주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계약서가 오지 않기에
굳이 나도 기다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퇴사를 선언했다. 이미 신뢰는 깨졌다.
 

결말

퇴사한 자들의 뒷모습

캐주얼 잡은 따로 노티스를 주지 않고 퇴사해도 된다.
언제든 해고당할 위험이 있기에
'캐주얼 로딩'이 붙은 페이를 지급받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따로 책잡힐 일을 남기고 싶지 않아
계약서 상의 노티스를 내기로 했고
서로 얘기가 되어 노티스 기간까지 일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장은 나에게 주는 돈이 아까웠던지
일이 밀려 공기를 넘기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주에는 아예 쉬프트를 주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지만 더 이상 내 알바는 아니었고
일주일 간 푹 쉬며 이직할 준비를 끝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직을 조금만 늦게 결심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퇴사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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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과정에서 느낀 점은
의심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의심한다는 것은
'믿을만한 사람인가'에 대해
검증하는 과정이다.
 
의심을 검증하기 위해선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 중에서 가장 얻기 쉬운 것은 검색과 구전.
다른 사람의 말들을
무조건 믿을 필요도 없지만
무조건 거를 필요도 없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기억해 두고,
해당 부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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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한인회사는 이번 공기를 맞추지 못한 걸 계기로
원청에서 계약을 파기한다고 한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회사가
어디까지 갈지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