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직의 일과 삶을 분리하기

 *이번 글에서 현장직이란 단어는 편의상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군을 총칭하는 단어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예전에 만났던 기술자 형님이 참 기억에 남는다. 일을 마치고 같이 차를 타고 집에 가던 도중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를 푸시더니 콘솔박스에서 값비싼 시계를 꺼내 차시는 거다. 호기심에 '어디 좋은 데 가시나 봐요'라고 물어봤더니 집에 가신단다. 근데 왜 좋은 시계를 차시냐고 물었더니 본인만의 일과 삶의 분리방법이란다.

 형님은 일할 때는 휴대폰을 잘 보지 못한다. 당연하다. 항상 작업을 하느라 양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 관련 전화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스마트워치를 통해 메시지나 전화를 수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으면 끊임없는 진동 때문에 집에서도 일하는 기분이 들어 잘 안차게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시계를 차는 오랜 습관 때문에 집에서도 시계를 차야했고 대안으로 시계를 하나 더 장만하셨단다. 이왕 사는 거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브랜드로 구매하셨고 이제는 삶의 원동력이 되셨다고 한다. 

 일과 삶의 태도에 대해 많은 주장들이 있다. 일하는 시간과 퇴근 후 시간을 철저히 분리하는 워크 라이프 밸런스(일과 삶의 균형)가 있고 워라밸을 넘어 워크 라이프 하모니(일과 삶의 조화)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일론 머스크(Elon Musk)처럼 워라밸 신경 쓰다가는 절대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위의 주장들은 모두 경영 및 관리직 혹은 사무직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다. 

 사실 현장직 근무자들은 일과 삶을 분리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현장에서의 일을 집까지 끌고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하고 돌아와 씻고 에어컨 밑에서 편한 옷을 입고 있으면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힘들게 일했다는 생각이 싹 사라진다. 먼지를 씻어내는 행위가 일과 삶을 자연스럽게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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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통해 일상생활의 나로 돌아온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용했던 소지품을 집에 가져와서 사용할 때는 일과 삶의 분리가 어려운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안경이 그랬다. 현장에서 쓰던 안경을 집에서도 끼고 있으니 아무리 먼지를 씻고 닦아내도 안경알과 안경테에 생긴 미세한 흠집들이 시야를 괴롭혔고 마치 일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형님처럼 의도적으로 현장에서 쓰는 안경과 일상생활에서 쓰는 안경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요즘의 나는 안경을 3개 사용한다. 일할 때 쓰는 안경, 쉴 때 쓰는 안경,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쓰는 안경. 각각 모양이 달라 안경을 쓰지 않고도 쓰임새를 구별할 수 있다. 이렇게 분리하고 나니 거울을 볼 때마다 안경에 따라 뭘 하고 있는지 의식하게 되었고 현재에 집중하게 되었다. 약간의 투자로 일과 삶의 분리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의 일과 삶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매 순간에 집중하는 삶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