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간 금주한 후기

11월 중순부터 많이 바빠졌다.
일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여러 일이 생겨
주말에도 못 쉬는 날이 많았다.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생길까 봐
혼자 술을 마실 여유도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고 나서
일주일에 1~2번은 꼭 술은 마시던 내가
가장 오랜 기간 술을 안마시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얼마 동안 참을 수 있을지
나 자신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이때 소리를 안 지른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포르투갈전.
16강에 올라가는 결정적인 골을 보고도
축배를 들지 않은 건 고문과 다름없었다.
아마 2010년 월드컵 이후 
맨 정신으로 본 월드컵은 올해가 유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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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안 마시니 좋은 점도 있었다.
먼저 컨디션이 일정하게 유지가 되어
일할 때 부담이 덜했다.
예전에는 술을 마신 다음날 일을 하면
오전에는 좀 멍하게 있다가
종종 한소리 듣곤 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걸로 혼난 적이 없다.
 
또 믿기 싫지만 기억력이 다시 좋아졌다.
최근에 예전과 달리 깜빡하는 일이 잦아져
디지털 치매가 아닌가 의심을 했다.
금주하고 며칠 동안은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깜빡했던 것도 금방 기억해낸다.

해마 부분이 살아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3주간 금주를 하니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맛있는 초밥을 보니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었고
술자리는 2차, 3차, 4차, 5차까지 가게 되었다.
이날은 왜 이렇게 취하지도 않는지..
 
비록 숙취로 인해 주말을 통째로 날렸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술을 자주 먹을 땐 숙취가 후회로 느껴졌다.
'다시는 술을 먹나 봐라' 이러한 감정도
후회를 기반으로 한 다짐이리라.
 
반면 이번 숙취는 '재밌게 잘 놀았다'의 연장선.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겪는 중간과정.
그간 참아왔던 것을 한순간에 털어냈고
그렇기에 숙취마저 즐길 수 있었다.
 
앞으로 자의적인 금주를 계속 실천할 예정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참고 참고 또 참다 마신 술맛,
그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해.